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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 90 댓글 2 예스잼 0 노잼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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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가 중3 여름방학이었나 학기 초부터 관심사가 비슷하다보니 친해졌고 (trpg나 철학 책들, 경제학사 이런걸 좋아했다. 딱 여자 경험 없고 똑똑한 남자애들끼리만 얘기 할 수 있는 주제의 취미)

우리 둘다 공부를 좀 했어서 스터디한다는 명목이랍시고 주말이나 방과후마다 카페 가서 같이 앉아있다 오고는 했다.

나는 얼굴이 좀 성숙한 타입인데 걘 피부도 뽀얗고 조금 어린애처럼 보여서 여동생처럼 챙겨주고픈 마음도 없지 않았고...

근데 카페에선 항상 에스프레소에 샷 추가한거만 마시더라
처음에는 특이하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만나서 같이 얘기하고 공부하는게 관성이 되다 보니 그것 자체만으로도 귀엽다고 느끼게된것 같다.

아마 개학 일주일 전쯤인가였을거다
걔네 부모님은 자주 그렇듯이 집에 안 계셨고 (아버지는 인서울 유명한 사립대 경제과 교수시더라... 바쁘시던듯. 어머니도 전문직이셨던거 같고) 걘 유달리 날 집에 들이고 싶어했다.
그래서 갔다.

현관문을 닫고, 그 넓은 아파트 40평대 건물에 우리 둘만 있었다 어딘가 야릇한 냄새가 났다. 물론 그냥 느낌이다 냄새는 없었고 그냥 유달리 그 애가 뭔가 나한테 계속 말하고픈 게 있는데 참는거 같단 느낌이 들었을 뿐이다.
“야 너, 왜이리 똥마련 강아지처럼 그러고 있냐” 걍평소처럼 툭툭 던졌다
애가 긴장이 풀어지더라
걔가 내 이름을 나지막이 부르면서 얘길했다.

00야, 너 내가 좀 특이한 소리해도 받아줄 수 있어?
그때 뭐랬는진 모르겠는데, 미칠거 같더라... ‘얘가 날 좋아하나? 그럼 뭐라고 답해야지?’ 이런 생각뿐이었다.

그러자 “00야 그럼“ 하고 걔가 가방을 방안에서 꺼내왔다.
열어볼래?
그애가 말을 했다.

뭐가 들어있는지,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혹시 편지인가 싶었다가 가방 사이즈랑 평소 보던 에로망가들때문에 얘가 망가속 치녀들 같이 성기구 매니아인가 하는 미친 생각도 들었다.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생각했지만
그 안에는 거대한 두께의 양장본이 들어있었다.
아이보리빛깔의 골동품 양장...
요즘 나오는 조잡한 허접쓰레기들과는 달리 볼드체의 큼지막한 제목만이 박혀있을 뿐이었다.

'Das Kapital'
"카를 마르크스의 사상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니?"
그 아이 알키비아데스의 얼굴에 레닌의 심장을 감춘-는 이렇게 물었다.
나는 그저 당시의 무지한 내가 할 수 있는 말만을 앵무새처럼 반복했을뿐이다.
주체사상, 북한, 비효율, 독재...
그는 이 모든 개념을 한 순간에 일축했다.

ㅡ이 모든 부정적인 이미지들은 자본가들의 음해일 뿐이야
ㅡ진정으로 중요한 사회주의의기치는 이런 것이 아니야.
사회주의는 경제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해
-인간이 진정으로 자유로워지는 것은 자본의 예속으로부터의 해방이 이루어졌을때뿐
-우리는 심판을 쟁취할 것이고, 그것은 인류 역사상 최고의 미학적 선택으로서 역사에 종지부를 찍을 것이야

나의 첫 '자본' 경험은 열여섯의 여름날, 친구의 방에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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